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이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친노 불량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른바 운동권 출신 386정치인들에 대한 검증론이 새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386 검증론’은 특히 그동안 386정치인들에게 제기되어 오던 이념적 논란에 더해, ‘도덕성’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6.2지방선거, 민주당 주력은 불법정치자금 받은 전과가 있는 386정치인들
민주당은 오는 6.2 지방선거에 386정치인들을 전면 배치했다. 386정치인 4인방 송영길 최고위원, 김민석 최고위원,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이 선봉에 선 것.
386정치인 1세대인 송영길 의원은 지난 달 24일 경선을 통과해 인천시장 후보로 확정됐고, 김민석 최고위원은 부산시장 경선에 나선 바 있다.
또 386정치인 2세대인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 최고위원은 충남지사에, 박연차 게이트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 중인 ‘오른팔’ 이광재 의원은 강원도지사로 출마한다. (이하 4人에 대한 호칭 생략)
이에 “이미 국민으로부터 엄중 심판을 받은 국정파탄의 주역들이자, 모두 과거에 비리로 처벌받았거나 재판 중인 사람들이 지방선거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 다시 권력을 잡겠다고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도덕성과 개혁성을 무기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등장한 이들 386정치인들이, 수없이 많은 도덕성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송영길 - “두 얼굴의 정치인, 불법으로 점철된 정치인생”
민주당세가 강한 인천 계양에서 내리 당선된 송영길은 2008년 총선에서 386정치인 중 최초로 3선 의원이 되어 가장 잘 나가는 386정치인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송영길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386정치인의 도덕성과 개혁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 부도덕 처신 사례로 꼽히는 일을 여러 차례 저질렀다.
그는 1999년 6.3 재선거 출마 당시 IMF로 망해가던 대우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대우자동차판매사장 전모씨를 통해 불법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억원의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의 지역구인 계양구는 대우자동차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했다’는 경력과 ‘노동자와 서민편’이라며 표를 얻어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의 이런 ‘이중인격’ 행위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2000년 5월 17일. 이날은 광주의 모든 술집이 문을 닫는다는 등 음주가무행위가 삼가한다는 ‘5.18 기념식 전야제’가 있는 날이다.
이날 전야제 참석을 위해 광주에 내려가 있던 송영길은 전야제에 참석하는 대신, 김민석을 비롯해 386세대 정치인, 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함께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에서 여성접대부들과 블루스를 추며 밤새도록 술판을 벌였다.
이러한 사실은 임수경씨가 인터넷에 올린 폭로글이 동아, 조선, 문화 등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되는 바람에 백일하에 드러났고, ‘이런 파렴치한 작태를 벌인 386정치인들이 도덕성을 자랑하고 개혁을 부르짖었다’며 여론은 들끓었다.
그의 선거법 위반 전과를 보면 상습적(?)이다.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본인이 직접 금품을 제공(63만원 상당의 축구공/10여만원 상당의 식사 등 6가지 혐의)한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80만원을 선고(2002.6.24.)받았으며, 그의 회계책임자는 자원봉사자에게 500여만원의 식사제공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4년 총선시민연대는 앞서 ‘대우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고 2000년 총선 당시 불법선거운동을 한’ 전과경력을 이유로 그를 낙선운동 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그는 계속해서 같은 해 총선에는 탈법적 문서배포행위로 벌금 70만원을 선고(2006.3.24.) 받았고, 2008년 총선에서는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전과경력만 적고, 절도와 공문서변조죄 등 전과경력을 빠뜨린 선거공보를 뿌려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2009.3.20.)
그의 ‘이중적 행보’는 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2009년 4월 9일, 송영길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고 남상국 대우건설 자살사건에 대해 사과하라” “재임기간 동안 어떤 돈을 받았는지 진위를 밝혀야 한다” “성역없는 수사가 필요하다”는 등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 그가 盧 사후 상복을 입고 나타나 ‘노무현정신’을 이야기하자, 노무현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마저 “송영길이 노무현정신을 이야기 할 때는 소름이 돋는다”라고 언급할 정도.
김민석 - “정치철새, 불법정치자금 수수의 달인”
김민석은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시 미문화원 점거사건으로 인해 3년간 복역한 바 있다.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 후 민주화투쟁 경력을 발판으로 15대․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민석은 2000년 5월 17일. ‘5.18기념식 전야제’가 있는 날 전야제 참석을 위해 광주에 내려가 있던 송영길 등과 만나 전야제에 참석하는 대신, 386세대 정치인, 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함께 모 가라오케에서 여성접대부들과 블루스를 추며 밤새도록 술판을 벌여 큰 논란을 일으켰고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또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7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다. SK로부터 2억원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것이 드러나 도덕성과 개혁성에 치명타를 입은 것.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받아 선거에 사용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 판결을 받은 그는, 17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어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
김민석에게는 386정치철새라는 뜻의 ‘김민새’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는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현 이명박 대통령에 패해 낙선 후, 2002년 대선 지지율이 낮은 노무현 후보를 버리고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로 말을 갈아탄다.
그러나 노무현이 단일후보로 결정되자 막판에 다시 정몽준 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네티즌들은 그런 그에게 ‘김민새’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이후 수 년 동안 긴 정치방학을 보낸 김민석은 지인들로부터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선고공판에서 “---정치자금은 맞지만 기부금이 아니고 빌린 것이라는 피고인 측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결하고 2009년 30일, 벌금 600만원과 추징금 7억2000만원을 선고했다.
김민석은 이후 민주당에 복당, 2009년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좌(左)희정, 우(右)광재’ 노무현정권의 최고 실세
안희정과 이광재는 노 전대통령의 20년 정치 동업자다.
1987년 애국학생회 사건과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안희정은 주사파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연세대 83학번으로 역시 운동권 출신인 이광재는 1987년 수배를 피해 부산에 갔다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팀장을 맡아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다.
盧 당선 후 안희정과 이광재는 ‘좌희정 우광재’ 소리를 들으며 득세했다. 이들을 필두로 2004년 탄핵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386정치인들은 국정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기득권자는 악’이라는 이념과잉에 사로잡혀 종합부동산세와 ‘3불(不)정책’을 밀어붙이고 한·미동맹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우선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별나게 도덕성, 청렴성, 깨끗함을 강조하며 여.야 기존 정치인들과 보수세력들을 부패집단으로 매도하고 성토해가며 “무능해도 깨끗한 정치를 했다”던 이들도 재벌들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아 쓴 혐의로 줄줄이 처벌받았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 정무팀장을 맡았던 안희정은 41억여원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나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12억 1000만원, 자기앞수표 1억원 몰수를 선고받는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는 세간의 평가로, 노사모에서 최고의 충신대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출감 이후 정치방학을 보내던 그는 2009년 ‘의리의 화신’이라는 평가(?)에 힘입어,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었으며 현재 충남도지사에 출마했다.
이광재, 권력형 비리에 단골...‘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노무현 정권 시절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 때마다 ‘약방의 감초’로 등장한 이광재는, 그러나 그때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갔다. 안희정과 함께 2002년 대선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지만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이었다.
그 후 이광재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내사는 10여 차례나 됐다. 노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과 유전사업 비리 의혹 등 그를 겨냥한 2번의 특검도 열었다. 이에 3차례 기소됐지만, 실형이 선고되거나 구속 수감된 경우는 없었다.
이랬던 그도 결국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불법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9월 1심 재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억4000만원이 선고됐다. 이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꿔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 2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현재 이광재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강원도지사에 출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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