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는 전혀 오감을 자극하지 못한다. 짜릿하지도 야하지도 파격적이지도 않다. 각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인 에로스로 묶인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어떤 단편들은 왜 이름을 올렸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홍보문구대로 이 영화의 기획이 신선하고 도발적인 기획인지는 몰라도, 색다른 감각의 에로스를 보여주겠다는 당초 목표는 완전히 실패했다. 보고나면 남는 게 없는 영화, 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단지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의 단편 5개를 묶었다는 것 정도? 각각이 따로 노는 영화, 주제의식이 사라진 영화들이 무리수를 띄고 그저 한 필름에 담겼다는 정도?
<오감도>에 등장하는 정사신 정도는 굳이 에로스를 붙일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수위가 높지도 않고, 평범하고 진부한 장면에, 등장하는 동성애 코드도 주어진 에피소드의 짧은 시간 탓 등으로 관객의 몰입이나 이해를 아랑곳 하지 않는다. 에로스 자체보다 차라리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철학코드로 읽힌다. 솔직히 다섯 개의 단편 어느 편에서도 <오감도>가 내세운 에로스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오감도>라니? 엉뚱한 다리나 긁고 있다. 멜로, 판타지, 코미디 등 각각의 단편이 입은 다른 외피들을 확장하고 뻗어갔어야 할 솜씨들이 엉뚱한 이름의 생뚱맞은 틀에 갇혀 버렸다.
his concern(감독 변혁)
평범한 회사원 정민수(장혁)가 부산 출장 중 KTX에서 앞자리에 앉은 큐레이터 한지원(차현정)과 인연을 맺고 하룻밤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낯선 도시로 출장을 떠나는 여행길에 완벽한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는 평범한 남성 셀러리맨들의 판타지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장혁의 나레이션을 통해 작업을 거는 그 남자의 설레임과 응큼한 심리묘사를 엿볼 수 있다.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이런 ‘원나잇’이 현실이 되려면 적어도 장혁과 차현정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 여기 있어요(감독 허진호)
멜로의 달인다운 애절한 사랑 이야기. 죽음을 앞에 둔 병든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사랑을 담았다. 아내(차수연)는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집안 어딘가에 꼭꼭 숨어 남편(김강우)이 찾기를 기다린다. 남편은 퇴근 하면 항상 “혜림아 어디 있니?”라며 아내를 찾아낸다. 병 때문에 이들은 부부의 정도 나눌 수가 없다. 살아서도 숨바꼭질 하듯 안타까운 사랑을 이어가던 젊은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서로를 끝내 보내지 못하고 숨바꼭질을 한다. 떠나지 못하는 자와 떠나보내지 못하는 자의 흐느낌이 울림을 주는 단편.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의 허진호 특유의 감성적인 사랑이야기지만, 굳이 <오감도>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에로스 주제로 엮이기에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단편물임은 분명하다.
33번째 남자(감독 유영식)
<오감도>에서 가장 독특하고 창의적인 단편이다. 코미디와 멜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판타지로 장르의 변주를 거듭하면서 순진하고 어리숙한 신인배우(김민선)가 노련한 중견 여배우 박화란(배종옥)의 가르침에 남자를 다루는 법을 깨우친다는 내용.
말수적은 천재감독 봉찬운(김수로)을 만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인배우 김미진을 보다 못한 박화란은 미진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고, 미진은 갑자기 능숙한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미진에게 무관심하게 보였던 감독은 촬영이 무사히 끝난 뒤에 사랑을 고백하는 등 미진의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데...이후 갑자기 장르는 바뀌고 기괴하고 음습한 식탁에서 미진과 화란은 봉찬운의 머리를 얹은 식탁위에서 깔깔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다.
장르의 혼재와 독특한 구성 등으로 인해 흥미롭기는 하지만 <오감도>에 끼워 넣기에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엔 마찬가지다.
끝과 시작(감독 민규동)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삼각관계 이야기. 남편(황정민)이 죽은 후에 알게 되는 그의 외도. 남편과 밀월을 나누던 후배(김효진)가 한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한사코 조르면서 이후 아내(엄정화)와 후배와의 기묘한 동거는 시작된다.
남편의 사망으로 끝난 듯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이후 새로운 관계로 시작, 발전한다. 반전이 숨어 있는 엄정화와 김효진의 관계 속에 동성애 코드가 펼쳐지지만 이들의 파격적인 성애 장면은 생각보다 파격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엄정화와 김효진 조합 자체가 영 와 닿지를 않아서인지도. 과감히 생략된 설명 탓인지, 짧은 시간 탓인지 금기 자체에 대한 거부감 탓인지 감독 탓, 아니면 받아들이는 관객 수준 탓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기묘한 관계를 수박겉핥기에도 벅차다.
순간을 믿어요(감독 오기환)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고교생 세 쌍의 스와핑을 소재로 다뤘다. 현재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대상을 바꿔가며 체험한 뒤 본래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불량스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원래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바람직한(?) 결론으로 끝난다. 요즘 고등학생들의 성애 장면도 어른 뺨친다는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끝나면 요즘 10들이 모두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섹스여행과 스와핑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고 싶은 현실적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부모들도 있을 것 같다. 하긴 불완전한 10대라도 그들의 육체는 에로스의 최고 절정기 아니던가.
<오감도>의 몇 몇 단편은 금기와 파격이 담겨있지만 그 낯선 자극은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주지 못하고 단순히 낯설기에 그치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담느라 영글지 못한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담아 놓았기 때문.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의식을 파고드는 기획력과 연출의 단호함이 부족했고, 옴니버스 영화라는 ‘틀’에 대한 감독들의 주의부족이 <오감도>의 어정쩡한 실패의 원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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