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악시장과 대중음악의 추락
디지털 음악시장의 등장과 창작의 기형화
마지막으로 CD를 구매한 적이 언제인지 떠올려보라.
아마 쉽게 떠오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편리하고 저렴한 디지털 음원이 등장하고 또 본격화되면서,
CD는 이제 소장하기 위한 상품 정도로만 전락하였다.
디지털 음악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반면 음반시장은 크게 줄어
오프라인 음반 매장도 2000개에서 300개로 줄었으며,
100만장 음반 판매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이제 완전히 대한민국 음악시장은
디지털화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디지털 음악시장의 등장은 뜻하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다.
100만장 음반 판매가 옛말이 되어버린 것과 동시에, 가수의 정체성과 작곡가의
역량, 세션 맨 들의 진정어린 땀과 같은 가치들도 옛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별력 있는 목소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위의 차트에서 음반에서 디지털음원으로
시장형태가 개편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음악은 대중에게 소비될 때 의미를 갖기 때문에 시장 논리와 무관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대중음악의 시장 판매 과정이 상업성을
띄는 것은 물론이고, 창작 또한 어느 정도 상업성을 띈다.
가요 창작의 상업성의 뚜렷한 예로, 대부분의 대중음악은 소비자가 집중하기
좋은 3~4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창작 과정이 대중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여태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은 소비자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창작자의
음악적 정체성과 진정성, 그리고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반영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 음악 소비구조의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이러한 창작과정이
지나치게 시장논리에 지배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른바 ‘공장 식 음악 창작’이
새로운 가요계의 창작 논리로서 등장하였다. ‘공장 식 음악 창작’은
말 그대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트렌디 팝을 찍어내는 창작 풍토를 말한다.
이런 창작 풍토 위에서 더 이상 가수의 진정성과 세션 맨 의 열정,
그리고 이들을 배합해내는 작곡가의 역량은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추락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풍토가 형성된 원인은 바로 디지털 음악시장이 갖는 특수한 성격에
기반하고 있다. 디지털 음악시장은 소비자로 하여금 ‘백화점식 음악 소비’의 장을
열었다. 이제 소비자들은 마치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을 고르듯이 클릭 한번만으로
다양한 음악을 소비할 수 있다. 또 디지털 음원시장에서 음원이 소모되는 기간은
혁신적으로 짧아졌다. 어떤 음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MP3에서, 벨소리에서,
통화 연결음에서, 미니홈피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기존의 오아시스는 쉽게 고갈되고, 이들은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또 다시 길을 떠난다. 이른바 음악시장에서의 디지털 노마드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한 음악에 오래 머무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다.
금방이든 음원을 바꾸어 들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데다가,
한 음원에 대한 노출 정도도 늘어나서 설사 오래 듣고 싶어도
금방 질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소비 패턴 속에 자연스럽게 과거에 중요했던
창작자들의 진정성, 작품의 완성도, 창작자의 역량 등이 중시되는 ‘날(生)음악’은
실종된다. 소비자들이 그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작자들은 이러한 소비 형태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도 금방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트렌드가 중요해진다. 소비자들에겐 한번 익숙해진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단 먼저 손이 가곤 했다. 그리고 창작자들은 소비에서 고갈로,
그리고 다시 재소비로 이어지는 숨 가쁜 쇼핑 주기를 따라가기 위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빠른 속도로 트렌디 팝을 무한 재생산해낸다.
이런 메커니즘으로 철저하게 결합된 디지털 음악시장에서의 소비논리와
창작논리가 결국 대중음악의 추락을 야기하는 것이다.
디지털 음악시장에서 음원들은 쇼윈도의 상품처럼 소비자 앞에 가지런히 나열된다.
소비자들은 이제 간편하게 선택만 하면 된다.
흥미롭게도 한 때 한국 가요의 주된 트렌드였던 ‘소몰이 발라드’는
이런 디지털 음악시장의 본격화와 맞물려있다. 디지털 음원 유통 사이트들은
저작권자들과의 많은 진통 끝에 2003년부터 차례차례 유료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디지털 음원시장이 자리 잡기 시작할 즈음인 2004년 1월, 남자 세 명으로
이루어진 ‘SG워너비’의 1집 가 발표되었다. 앨범의 타이틀 곡 ‘Timeless’는
보컬의 과잉된 기교와 리드미컬한 미디엄 템포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발라드였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꾸준히 사랑받던 장르인 발라드를 택하여
리스크를 줄였고, 여기에 감정의 과잉과 빠른 템포라는 특성을 불어넣어
디지털 음악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였다. 확실히, ‘감정의 과잉’과
‘빠른 템포’라는 점은 쇼윈도에 널려있는 음원들 가운데 강하게 눈길을 끌만 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SG워너비는 정규 2집 앨범에서 똑같은 스타일의 곡 ‘살다가’, ‘죄와 벌’을
연달아 히트하는 데에 성공했고, SG워너비의 기획사를 중심으로 SG워너비류의
가수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게 된다. ‘씨야’, ‘먼데이키즈’, ‘엠투엠’, ‘블랙펄’,
‘가비앤제이’, ‘브라운아이드걸스’ 등 대부분의 신인 발라드 가수들은
성공보증수표인 미디엄템포 발라드를 통해 데뷔하고, 성공했다.
음악 평론가 이대화씨는 브라운아이드걸스와 씨야가 함께 발표한
'To my lover'라는 싱글앨범의 타이틀곡 ‘The day’의 리뷰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젠 좀 공장에서 찍어낸다는 느낌이다.
똑같은 편곡에 똑같은 창법인데도 그룹 이름만 바꿔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비슷한 보컬끼리 묶어서 한 번 더!
이 뻔한 드럼 소리와 청승맞은 최루성 현악 도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디지털 음악시장에 발 맞춘 새로운 발라드 접근법으로
큰 성공을 거둔 SG워너비의 1집 앨범 표지 사진
어느 순간 모든 게 잘못되어 간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시점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막연하게 익숙한 패턴을 선호하였다.
지겹다고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지만 ‘왜’ 그 음악이 지겹고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그런 목소리를 낼만한 사이버 공간도 없었다.
티 한 장을 사더라도 상품평을 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시대 인터넷 문화이다. 하지만 ‘댓글’, ‘인터넷 리뷰’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와, 클릭 한번이면 소비가 끝나는
디지털 음악시장과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디지털 음원 시대의 노마드들에게 음원에서 다른 음원으로 옮겨가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쿨하게’ 맘에 안 들면
그냥 다른 음악을 들었다. 그러한 소비자들에게 가요는 어디까지나 취향에 맞으면
듣고 안 맞으면 버리는 기호 상품이었다.
이런 소비 구조의 특성과 가요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디지털 음악시장만 디지털화 되었을 뿐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피드백은
디지털 공간에서 실현될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의 디지털 음악시장은 트렌드가 많은 것을 지배하는 형태로 개편되었다.
이런 시장에서 창작자에게 중요한 능력은,
트렌드를 얼마나 민감하게 읽어내는지와, 음원을 찍어내는 ‘생산력’이다.
창작과정에 있어 시장논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장논리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가요는 창작자의 개성, 진정성, 역량과
같은 가치들을 더 이상 담아내지 않는다.
이렇게 가요는 예술이 아닌 ‘상품’으로서 시장에 던져진다.
그리고 이런 음원들이 주위에 늘어갈수록 소비자들은 가요의 예술성을 불신하고
음원들을 무심하게 소비하고 소모한다.
소비자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이는 다시 창작자들이 음원을 찍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그릇된 창작논리는 그릇된 소비논리를 낳고, 이는 다시 그릇된 창작논리를
부추긴다. 바로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우리 가요계가
지금 처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속에서 가요는 본래의 예술성을 잃고,
그저 시장에 던져진 상품 정도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b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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